자동폐쇄장치 기준 개정하며 ‘출입문 개방력 최대치’ 삭제
열 때 필요한 힘 11kg 넘어…전문가 “원래 기준 되살려야”

소방청이 아파트 복도 등에 설치하는 자동폐쇄장치의 성능 기준을 조정하면서 화재 시 계단실 문을 열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주장이 나왔다. 자동폐쇄장치는 화재 시 아파트 복도의 출입문을 자동으로 닫아주는 장치다.
성능인증 및 제품검사 기술기준 상 출입문용 자동폐쇄장치 작동에 소요되는 힘은 종전에는 △문이 닫힐 때(폐쇄력)는 37N(뉴턴) 이상 △열릴 때(개방력)는 60N 이하 △문이 개방돼 유지되는 상태를 수동으로 해제할 때는 80N 이하로 규정돼 있었다. 소방청은 2023년 11월 폐쇄력 기준을 ‘최대 크기의 문이 닫힐 때 필요한 힘은 제조업체가 제시한 폐쇄력설계값 이내여야 한다’로 개정하고 개방력 기준을 삭제했다. 아울러 표시사항에 ‘차압설계값과 폐쇄력설계값, 방연풍속값, 제연설비 비가동 시 출입문의 개방에 필요한 힘은 110N 이하여야 한다’는 문구를 넣도록 했다.
이처럼 개정한 것은 화재가 발생했을 때 제연설비의 과다한 공기 속도(방연풍속)와 양으로 인해 계단출입문이 닫히지 않는 현상이 자주 발생하고 이로 인해 계단실에 연기가 유입돼 질식으로 인한 사망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제연·피난 설비를 연구해 온 조일형 소방기술사는 “개방력 기준을 평상시 60N 이하, 제연설비 가동 시 최초 개방에 110N 이하에서 상시 110N 이하로 바꾼 것”이라며 “미국이 출입문을 여는 데 필요한 힘을 67N 이하, 제연설비가 가동됐을 때는 133N 이하로 규정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서양인보다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한국인이 문을 여는데 더 많은 힘을 쓰도록 기준을 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방청의 기준 변경 이후 출입문 개방에 필요한 힘을 제연설비 가동 시 110N 이하로 해 인증받은 자동폐쇄장치 제품이 시판되고 있다. 110N을 킬로그램힘(㎏f)으로 변환하면 약 11.2㎏이다. 건장한 성인 남녀가 열기에는 무리가 없지만 노인이나 어린이, 장애인 등 노약자는 팔 힘만으로 열기 어려울 수 있다. 게다가 방연 풍속이 과도할 경우 더 강한 힘이 필요해 비상 상황에서 신속한 개방이 어렵다는 것.
조 기술사는 “화재 시 제연 문제는 제연설비의 과풍속과 과풍량으로 인해 발생한 것인데도 소방청이 자동폐쇄장치 개방력의 최대치를 삭제해 결국 자동폐쇄장치의 개·폐쇄력 임의 조정에 대한 면죄부를 부여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시공사의 편의를 위해 출입문 개방력 최대치를 삭제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면서 “개방력 기준을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대구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은 2023년 3월 모 신축 아파트의 출입문이 과압 및 과풍량으로 인해 열리지 않는 문제를 지적했다. 당시 대구안실련은 “아파트 화재 시 질식 피해의 가장 큰 원인은 필요량보다 많은 풍량을 공급하는 것”이라며 “현장에서는 차압을 유지해 주는 급기댐퍼만 설치하고 과압과 과풍량을 조절해 주는 과압방지장치는 설계에 반영조차 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개선을 요구했다.
제연설비 전문가 A씨는 대구안실련의 현장 확인을 예로 들며 “화재 시 제연설비로 인한 과다한 공기가 문제라면 공기를 빼낼 방법을 연구하고 관련 장치를 개발해야 하는데 그것 대신 임시대책만 내놓고 있다”며 “힘이 없는 사람은 문도 못 열고 죽으라는 것이냐”고 따졌다.